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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읽을거리/인생 & 썰

[스크랩] 제소자였던 사람으로써 교정직에 대해서 한말씀 드립니다

by    2020. 9. 11.

가끔 불펜에서 교도소 관련 질문이나 의문들이 올라오면 제가 답을 해드리는데요. 전 양심적 병역거부(비종교적인 사유)로 의정부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을 살았기때문에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교정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제가 만나본 '직원'(제소자들은 교정직 공무원을 이렇게 부릅니다. 교도관이라고 안불러요)들중에선 7급으로 들어온 교정직 직원은 거의 없었어요. 한 계장분이 30대쯤밖에 안되어보이시는데 아주 일찍 계장을 달은지라(6급에 해당) 그분이 7급출신이 아닐까라고 지레짐작할뿐 계장급이상은 제소자들이 거의 마주칠이 없기때문에 7급이상의 교정직 공무원의 생활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이 불가능해요. 뭐 다른데처럼 7급으로 들어오면 근속년수로 7급을 달은 다른 주임님들에 비해서 좀더 중앙에서 일하고 승진도 잘되는건 마찬가지겠죠. 여하간 제가 설명드릴수 있는 교정직은 9급이 전부입니다.
9급 교정직 공무원은 다른곳에선 어떻게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담당'이라고 부릅니다. 8급은 부장 7급은 주임 6급은 계장 5급은 과장 이런식으로 올라가구요. 그 이상은 만나뵌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사실 과장 정도만해도 교도소안에서는 신의 영역이죠. 여하간 이 '담당' 님들은 실제로도 교도소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분들인데, 제소자들도 딱히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라고 생각하진 않을정도로 무게감은 없어요. 저도 소지라고 한사동의 잡무(배식 청소 쓰레기 수거등)를 다 담당하는 일을 하다보니 자주 만나게 되는 분들도 생기고, 단둘이 있을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해서 친해져서 나중에는 저에게 순수하게 선의로 안에서는 못먹는 과자같은거 던져주는 담당님들도 생기고 그랬죠. 그분들도 처음부터 뭐 빡세게 대하거나 그러시진 않았고 우리쪽에서 예의를 가지고 대하면 서글서글하게 와서 말도 잘걸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고 그래요.

 

교정직이란게 주된 업무가(특히나 하급으로 내려갈수록) 일종의 교도소 방범같은건데 혼자서 20개의 방들의 안전을 관리하다보면 아무래도 심심하거든요. 그리고 교도소란데가 가장 사고가 많이 날것같지만 사고가 진짜 바깥보다도 없는 곳인지라 사실 '관리'할것도 별로 없구요. 그래서 심심하면 방으로 와서 수다 떨고 그래요. 물론 그러다 걸리면 상급자한테 혼나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죠.

 

그만큼 9급만해도 제소자입장에서든 직원의 입장에서든 서로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 관계에요. 제소자들도 9급은 친해져봤자 자기한테 도움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사이가 틀어지면 자신이 굉장히 귀찮아질수있기때문에 그냥 어지간하면 서글서글하게 비위맞춰주는 분위기가 강하구요. 이건 일반 제소자들뿐만 아니라 건달,살인등 바깥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강력범으로 분류되는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에요. 그분들이 같은 제소자들끼리는 권력다툼같은게 심하긴해도 직원들에겐 전혀 그런거 없죠. 뭐 청송같은 4급교도소는 문제범들이 많이 모인 곳인지라 희망도 없는 장기제소자들이 직원들 코나 걸어서(사소한거롤 트집잡아서 행정처분맞게 하는거 속된말로 엿먹이는걸 코건다고 표현합니다) 자기 이득 챙기고 그러긴 하지만, 전국 대부분의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에게 직원은 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형동생(?)같은 존재에요. 어쨌든 자기가 뭔가 아쉬울때는 직워들의 힘을 빌려야 조금이라도 쉬워지는곳이 교도소니깐요.


다만 힘든게 없는 건 아닌게, '지루함'이라는 어마어마한 고통아닌 고통이 있어서 쉽다고는 말못합니다. 지루한게 뭐가 어려운거냐 라고 물으신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지루해도 정도껏지루해야죠. 보통 공무원들도 똑같이 반복되는 업무가 지루해서 하루종일 컴퓨터나 하고 바둑이나 두고 주식이나 보기는 하지만, 교정직 공무원은 약간의 엘리트코스를 밟아서 중앙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제소자 계호(이동하는 제소자들을 따라다니는거)하거나 제소자들의 안전유지를 하는게 대부분의 일인데, 이때 교도소의 특성상 컴퓨터 근처에도 갈수가 없습니다.

 

어쨋든 한공간에서 제소자들을 담당하게 되고 따로 사무실은 있지만, 교도소안에서 제소자와 조금이라도 근접한 구역에는 컴퓨터를 놓을수가 없기때문에 사무실에 씨씨티비말고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의자하나 있네요. 거기에 핸드폰도 반입불가죠. 사적인 책도 나중에 주임급되서 짬으로 그냥 규칙같은거 슬쩍 뭉갤수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지고 들어갈수가 없어요. 이런 근무를 한두시간도 하는것도 아니고 하루 왠종일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책상하나에 의자하나놓고 그냥 진짜 멍때리다 오는거에요. 젊은 직원들은 제소자들이 가지고 있는 만화책이나 무협지 빌려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주임들은 공장에서 제소자들하고 바둑이나 둡니다.

 

거기에 9급은 3일에 한번 야간근무를 서는데 제가 소지였어서 정확히 시간을 아는데 저녁 7시부터 아침 5시반까지 근무를 습니다. 의정부교도소 기준 한방당 8명정도 배치되어있는 20개의 방을 그 시간동안 '관리'해야하는데 다 자는 시간인지라 사고같은건 거의 발생하지 않죠. 가끔 싸움이 일어나긴 합니다만, 진짜 가끔이구요. 그렇게 싸우면 제소자한테 가해지는 불이익이 크기때문에 대부분 말로나 싸우지 주먹질은 잘안합니다. 교도소의 모든 싸움은 심리전인지라 직원이 와도 사실 별로 할수있는게 없어요. 그 시간동안 유일하게 할수있는건 제소자들한테 만화책 빌려서 읽거나 몰래 공부할거리 가지고와서 공부하는건데 그런 생활을 20년동안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아닌말로 교정직 직원도 똑같이 징역산다고 스스로들 이야기하는게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것과 불가능한것의 차이는 크죠. 하지만 근무시간에는 제소자들은 운동도 하고 수다떨만한 동료 제소자도 있고 싸움도 하고 신경전도 벌이고 책은 정말 마음껏읽을정도로 할게 나름 있는데 교정직 직원은 진짜 시간때우는거 말고 할게 없어요. 운동시간에도 제소자들 지켜보고 있어야지 혼자 운동하는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거기에 신경과민에 빠져있는 제소자들의 -딱히 목적도 없고 개념도 없는 그냥 신세한탄성 - 투덜거림도 들어줘야하죠. 진짜 심심해서 죽습니다. 그나마 7급쯤 되면 진짜 아무것도 안하면서 돈을 적당히 받아가니 괜찮은데 9급은 3일에 한번 무조건 야간 근무를 서야하는게 진짜 고되죠. 거기에 교정이 주5일이 어디있습니까. 주말에는 제소자들이 뿅하고 사라집니까. 공무원이 좋은 이유중 하나가 칼퇴근에 주5일인데 교정직은 그런 장점이 하나도 없어요. 저같으면 교정직 갈바에야 다른 곳갑니다. 이건 점수 몇점에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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