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살기 좋은 시대다.
의무교육을 적당히 이수하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일하면 동수저 정도는 될 수 있다. 느리더라도 어딘가 집 한 채 마련하고, 자가용도 끌고 다니고, 옷도 잘 사 입고,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먹이고 입히고 키우며, 알뜰하다면 그러고도 어느정도의 여유는 생기기 마련이다. 비싼 옷을 입거나, 자주 해외여행을 가거나, 매일같이 외식을 하지는 못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남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충분히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굶어죽을 걱정, 얼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자리잡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살면서 억울할 수도 있고, 남들이 부러울 수도 있지만, 이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그렇게 실제로 살아보면... 정말 그냥저냥 괜찮다. 살기 참 좋은 시대다.
그런데 나 혼자 살면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몸 멀쩡하면 혼자 살아남기는 너무나 쉽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거기다 몇명 더 얹혀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가족이 있다. 가족이 있으면 좋잖아? 그런데 이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병으로 앓아누운 어머니가 계실 수도 있고, 장애를 가진 형이 있을 수도 있고, 빚더미에 앉은 무능한 아버지가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없는 능력으로 당신을 어찌어찌 키워낸다. 그리고 당신이 성인이 되면, 이들은 고스란히 당신이 부양해야 하는 짐이 된다.
한달에 200만원 벌어도 혼자 집세 내고, 옷도 사고, 외식도 하고, 차도 사고, 저축도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런데 어머니 병원비는? 근로능력없는 형은 누가 먹여살리고, 이제는 술만 마시는 아버지 빚은 누가 갚나? 200만원 가지고는 택도 없다. 따로 살 여유도 없다. 그래서 좁은 한 집에 바글바글 모여 산다. 외식은 커녕 치킨 한 번 시켜먹기도 힘들다. 멀쩡한 차는 꿈도 못 꾼다. 네 사람 식비에, 집세, 병원비를 빼고 나면, 온 가족이 허리를 졸라야 적금 하나 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럼 그냥 남겨두고 혼자 살면 되지 않나? 그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키워 준 사람들이고, 싫어도 정 든 가족이고, 당신이라도 없으면 더욱더 나락으로 빠질 사람들이다. 뭐라고 하며 도망갈 것인가? 책임감과 정, 그리고 두려움에 결국 끝까지 묶여 산다.
짐만 되면 그나마 괜찮은 경우.
사실 저정도만 되어 주어도 좋다. 그래도 애써 함께 살아온 가족이다. 어머니는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을까, 형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아버지도 가족들 먹여살리려다 그렇게 된 것이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가족애가 있고, 싸우더라도 결국 같이 몸부림치며 살아남았다. 당신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은 최소한의 도움은 되었다. 대학은 못 가도 학교는 잘 다녔고, 밥도 챙겨 먹었고, 부족해도 가족과 함께 자랐다. 해 줄 수 있는게 없어서 그렇지, 일부러 나서서 당신의 삶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힘들고 억울하고 서글펐지만 딱 그까지였다.
그런데 병, 빚, 장애 같은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도박이다. 대부분 무난하고, 가끔 짐이 되기도 하지만 간혹 당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가정불화, 아동학대, 무관심, 혹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단순한 빈곤 이상의 경제적 문제를 겪는 경우 말이다.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가족을 떠나기는 더 쉬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면 당신은 이미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을 테고, 제대로 무언가 해 볼 기회가 있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몸과 마음은 상처로 가득하다. 잘 자란 경우와 마음가짐부터, 삶의 태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남들이 몇 걸음 앞서 시작할 때, 몇 걸음 뒤에서 짐을 떠안고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동수저와 흙수저의 거리
소위 말하는 "수저"는 모두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수준으로 결정된다. 부모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반면 동수저와 흙수저 간의 거리는 다른 모습을 띤다. 부모가 당신의 삶을 얼마나 방해하는지가 동수저와 흙수저를 갈라놓는다. 기본적인 것만 갖추면 동수저는 될 수 있다. 동수저와 금수저 간의 거리도 멀고 불합리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래도 삶이 괴롭지 않다. 그런데 동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도 운이 좋아야 한다. 성인이 되어 부모를 혼자서 부양해야 한다거나, 혹은 상처와 불화만 가득한 성장과정을 겪었다면 흙수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불공평한 경주다. 삶이란 경주 속에서, 달리기를 연습할 기회도 없었던 사람이, 짐을 울러메고 100미터 뒤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끝까지 뒤쳐지게 된다. 한참 뒤에서 숨 차 가며 달려봐야 어차피 꼴찌는 똑같은데, 그냥 대충 걷고 싶지 않을까? "왜 노력하지 않는가?"는 너무나 무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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