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한 읽을거리/인생 & 썰

[이야기] 버스에서 누가 토함

by    2019. 9. 27.

버스에서 멀미하고 토하는 거야 예삿일이다. 그래도 멀미가 아주 심하면 버스는 가능한 피한다. 그런데 추석 연휴에 버스를 탄 이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내 대각선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불편해 보이기 시작했다. 자는 것도 아닌,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찡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멀미가 심한가 보구만. 하고 생각했다. 저 정도는 드물지 않다. 보통 저러다가 잠들거나, 봉투를 입에 대고 목적지까지 구역질을 한다. 성가시지만 어쩌겠는가? 그도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금세 그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상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끙끙 앓더니 급기야 손을 들고일어났다. 아마도 일어나서 "기사님! 휴게소에 좀 정차할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어지간히도 괴로웠나 보다. 그는 일어나며 다급한 목소리로 기사님을 불렀다. 그런데 목소리는 "기사니..."까지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불길하고 불쾌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처덕처덕 하고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웬 비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 지독한 쉰내가 풍겨왔다.

마치 교통사고를 목격한 순간이 기억나지 않듯, 그 순간은 기억이 희미하다.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고서야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의자를 짚고 서서 멀뚱거리고 있었고, 그 앞에 앉아있던 여자는 머리부터 토를 뒤집어쓰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일어나려는 순간 앞자리에다 토를 쏟아버린 것이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남자는 더 이상 기사를 부르지 않았다. 소리 질러 기사님을 부르는 사람은, 이제 토를 뒤집어쓴 그 여자였다. 

버스는 가까운 휴게소에 멈췄다. 가는 동안 남자는 뒤처리를 하며 계속 사과만 했고, 여자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휴지를 받아 옷을 닦았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둘은 함께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가 먼저 내렸고, 남자는 쭈뼛거리며 뒤떨어져 따라갔다. 둘이 없는 사이 기사 아저씨가 뒤편으로 와 투덜거렸다. 토를 할 거면 봉투에다 할 것이지 하면서. 십여 분 후 여자는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남자가 뒤이어 탈 때 기사 아저씨는 한 번 더 잔소리를 했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둘이서 해결은 된 것 같았다.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다. 세탁비 정도를 주고 말았을까? 옷은 새로 산 옷일까? 버스는 곧 다시 출발했다. 남자는 다시 뒤척이며 괴로워했고, 여자는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