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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읽을거리/사회 & 역사

[관찰] 세계를 제패한 환국: "환빠"는 어디서 왔을까?

by    2019. 10. 7.

크..크고 아름답습니다!

"환국"이라는 상상 속의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한민족이 세운 고대 국가로서,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통치하고 수많은 문화와 민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국가의 존재를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소위 "환빠"라고 부른다. 이들의 역사관 속의 한민족은 세계 역사의 중심을 차지한다. 세계 문화의 원류가 된 한민족, 유라시아를 누비며 거대 제국을 건설한 한민족. 한국인이라면 언뜻 솔깃할 수는 있다. 동북아시아의 반도에서 적당히 눈치 보며 살았던 고려-조선시대, 그리고 선진국이라지만 더 큰 강대국들과 비정상국가 가운데 끼여서 쩔쩔매는 지금에 비하면 얼마나 통쾌한가. 그러나 이는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다. 가설은 물론이고 상상이라고 하더라도 부끄러울 정도로 터무니없다.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 종류도 다양한데, 만주와 중원 일부를 차지한 버전부터, 중국 대륙 전체를 점령했다는 이론, 위와 같이 일본 열도에서 브리튼 섬 남부까지 뻗은 전례 없는 대국임을 주장하는 터무니없는 의견도 있다. 아무래도 뗄 수 없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너무 터무니없지만 않으면 듣기는 좋을 수 있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환빠"들의 역사관은 근거 없고 망상적인 왜곡이 너무나 심하다. 타국에서 보기 힘든 이런 기이한 재야 사학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민족주의 교육과 실제 역사의 괴리

동아시아는 굉장히 민족주의가 강한 지역이다. 한국, 중국, 일본 국민 모두가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민족주의가 강한 편이다. 근현대에 국가 발전에는 민족주의적 사고관이 굉장히 유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대부분 이민족의 대거 유입을 겪지 않아 겉으로는 "단일민족"을 유지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상적 기반 때문에 동아시아 3국은 닮은 점이 많음에도 서로 배타적이고 많은 역사 분쟁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민족주의 교육의 핵심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역사와 자주성이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른 민족보다 더 어떻게든 더 우월하며 더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가 동반된다. 그리고 이는 다소 정복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색채를 피하기 힘들다.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나라들 모두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한중일 가운데 한국이 유난히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중국은 (단일민족과는 가장 거리가 멀지만) 지역 종주국으로서 수천년간 중심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의 역사교육에서 민족주의는 진나라-한나라-당나라 등의 계보를 통해 이어지는 중원 제국과의 연결점과 지속성을 찾는 데 있다. 중국의 경우 민족주의 교육과 실제 역사 사이게 큰 괴리가 없다. 한편 일본은 오랫동안 변방국가의 위치에 있었지만, 20세기 초중반 한 번이라도 아시아 최강국으로서 군림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민족주의는 전쟁범죄로 얼룩진 일본제국 시대에 향수를 갖게 하는 크나큰 결점이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역사와 사상의 괴리를 느끼지는 않는다. 변방이었지만, 바로 변방이었기 때문에 타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침략받은 적도 없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최강의 침략 제국, 패전 후에도 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다름없이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을 고수함에도, 한 번도 제대로 된 정복국가가 된 적이 없다. 비교적 큰 영토를 점령하고 나름의 제국을 성립했던 고구려가 있지만, 고구려 역시 중원 제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 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그 역사가 끊어지고 만다. 그 후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통일 신라, 고려, 조선은 한반도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했으며, 주변국에 큰 군사적/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그 문화가 우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고조선부터 고려, 조선까지 한반도의 국가는 훌륭하고 특색 있는 문화를 이룩했다. 그렇지만 절대 민족주의적 환상 속의 초강대국, 정복국가, 대제국에 미치지는 못 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우월함"을 중심으로 교육받은 세대에게 불편한 진실이었을 것이다.

인지부조화와 해결책: 한민족 대제국 "환국"의 탄생

이러한 괴리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가장 온건한 경우는 고구려사에 대한 편애와, 통일신라의 계보를 따르는 사대주의적 왕조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여기까지는 건전한 역사학의 한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역사와 사상의 인지부조화는 상상 속의 국가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환국”이다. 극단적 민족주의의 사관 속에서, 우리가 아는 우월한 한민족의 격에 맞는, 세계를 제패하고 제국으로서 속국을 거느린 상상 속의 국가가 탄생한다.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대체로 "인류 최초의 나라", "인류 최대의 제국", "한민족이 중심이 된 제국"등의 명예로운 수식어를 동반한다. 이 나라는 아주 먼 옛날에 건국되어 전성기를 맞고, 그 이후로 수축과 수축을 반복하며 조그마한 조선으로 퇴화한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상상 역사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처럼 영토의 규모에 집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신화 속의 이야기를 역사로 편입하여 자기 “민족”의 역사가 훨씬 더 길었다고 믿거나(일본 등), 서양에서 싹튼 현대 학문이 사실 자기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것이라거나(중국 등), 혹은 입지가 애매한 고대제국들(사실 고대국가가 20세기 이후의 국가에 일일이 대입이 가능한지도 의문)을 자신의 역사에 억지로 편입하는 정도에 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난히 광활한 영토와 정복에 집중한다. 이는 중원의 중국과 북방의 난폭한 유목민족, 그리고 3면을 둘러싼 바다 때문에 한반도에 압축(?)되었던 특징적 역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남북국시대 이후 만주조차 다시 진출하지 못했던 설움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위대할 필요는 없다

소위 말하는 “환빠”의 존재는 가장 두드러지는 하나의 현상일 뿐, 민족주의적 사고관은 우리 마음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보통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할수록 일본의 침략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 등에 대해 더 강한 반감을 보인다. 환국의 존재를 주장하는 수준에 달한다면, 현대 중국과 일본의 행태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런데 일관적인 논리로 그들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자국우선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마음속에 몰래 제국주의적 정복국가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잣대는 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러한 과도한 민족주의적 사고는 가장 극단적인 예시일 뿐이다. 정론적인 역사관을 가진 우리들도 어쩌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환빠”들의 터무니없는 상상들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륙을 정복하는 국가를 선망하는 이유는 뭘까?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교육이 개인의 가치와 국가의 위대함을 단단히 묶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속 국가의 크기와 개인의 자부심을 연관시킬 필요는 없다. 위대한 역사가 있을 필요도 없다. 왜 인류의 소중한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각 지역의 역사를 중립적이고 담담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까. 경주의 신라는 서울의 백제를 침략하고 멸망시켰지만, 서울 사람이 경주 사람을 미워하거나 자격지심을 갖지는 않는다. 이처럼 인위적인 국가와 민족의 울타리에 갇혀 자격지심을 느끼거나, 타인/타국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사랑하는것은 좋다. 그러나 제주 사람이 제주를 사랑하듯, 광주 사람이 광주를 사랑하듯, 언젠가는 배타적이지 않고 온건한 사랑만이 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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